파란만장했던 30대가 지나갔다. 결혼을 하고 직장을 갖고 아이 둘을 가졌다. 20대는 그냥 풋풋하게 지나갔다면, 30대에는 나름 인생의 단맛, 쓴맛등을 다 맞으며 지나간거 같다. 돌이켜 보면 아빠가 한창 일하실때가 40대이시다. 내 기억속에 있는 엄마 아빠는 40대 모습이신데.. 이제 내가 그 나이대로 들어간다 하니..인생이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남자의 시작은 40이라는 아내의 말을 믿고 외쳐본다. 내 40대여 찬란하게 빛나라!
월수금 12시간씩 일하고 화목에 애들 보는 체제로 돌린지 어느덧 1달이 되어간다. 애들 보는날이 힘들때도 있고 좋을때도 있고 그날 그날 다르지만, 오늘 같은 경우 아침부터 약국에 일이 생겨 약국에 애들 둘을 데리고 가게된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그래도 어머님이 약국으로 오셔서 애들 픽업하고, 생각보다 빨리 와준 릴리프덕에 그나마 일찍 집에 올수 있었다. 이런저런 해프닝후에 준수도 피곤했는지 생각보다…
욱이 허리다쳐서 취소됬던 가족모임이 어떻게든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저 득실득실한 남자 도련님들에게 사이에 홍일점인 우리 마누라..아이들까지 남자애들이니..언젠간 여자 동서들도 생기겠지. 오랜만에 만나 서로 안부를 묻다보니, 다들 일과 삶의 밸런스가 좋아보인다. 조금 부럽기도 하고 ㅎㅎ. 남자들만 있어선지 매리크리스 마스, 새복 많이 받아란 얘기도 못했네 다들 새해에도 건강하게 잘 지냅시다. 내년엔 아빠 엄마도 다 같이 만납시다!
2주를 계획하고 한국에 왔었다. 출국하기 2틀전: 둘째가 갑자기 설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두번 하다 말겠지 했는데 멈추질 않는것이 아닌가. 상태가 심상치 않음에 병원을 갔다. 탈수 위험이 있어 링겔로 수액과 포도당을 맞고 다행히 설사도 멈추고 둘째도 어느정도 회복이 됬다. 출국하기 하루전: 대방동에 모여서 아빠 엄마와 캐나다 가기전 마지막으로 시간을 같이 보냈다. 아버지 역시 항암 치료가 있어서 다음날…
아빠 엄마의 갑작스런 한국행은 깊이 생각하거나 슬퍼할 겨를없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만 몰랐을뿐,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마음에 구멍을 안고 살게 되었다. 아빠 엄마의 부재. 비어있는 노스욕집. 그리고..할아버지를 보고싶어 하는 첫째 수.. 노스욕에 갈때면 자기도 모르게 할아버지 하고 외쳐부르다 멋쩍게 웃으며 아 할아버지 할머니 지금 한국에 계시지라 말하는 수를 봤을때. 뒷마당에서 혼자 놀고 있는 수를…
이번에 한국에 갔다 캐나다에 “생환”했다. 누가 그랬던가..애들이 둘이 되면 더 쉽다고. 아마 너도 당해봐라 하고 떠도는 말이 아닐까 싶을정도로 힘들다. 2배로 힘든게 아니고 그냥 헤아릴수 없이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을 낳길 참 잘했다. 그래. 이렇게 항상 서로에게 기대며 의지하며 도우면서 잘 살아라! 사랑한다 우리 아들들!
코비드 후 약국에서 미치도록 혹사당한 후, 번아웃이 심하게 왔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일 나가기 힘들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번아웃이 안왔다면, 지금처럼 운동, 책, 글쓰기등을 시작도 안했을 것이고, 나에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알아보려고 시작도 안했을테니깐. 여러가지 상황으로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어제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발전한 내가 있다. 번아웃..그리 나쁘진 않아!
출근하기전 차 앞 창에 떨어져 있는 낙옆을 털며, 어느덧 가을을 지나 겨울이 다가 오는구나 생각했다. 아빠 엄마가 한국 가실때만 해도 햇빛 창창한 여름이였는데. 시간은 항상 같은 속도로 가는데, 이번 겨울은 유독 빨리 오는것 같다. 어제 잠깐 엄마 아빠랑 다 같이 통화했다. 항암치료에 긴 기간동안의 항생제 치료 그리고 이번에 스탠트 수술까지 하셨으니,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아빠뿐만…